갑자순은 60갑자의 첫 번째 순으로, 갑자부터 계유까지 10개의 간지가 이 순에 속합니다. 구체적으로 갑자, 을축, 병인, 정묘, 무진, 기사, 경오, 신미, 임신, 계유의 10개 간지입니다. 이 순에서 빠진 지지는 술과 해이며, 이 두 지지가 갑자순의 공망이 됩니다.
공망이란 '비어서 없다'는 뜻으로, 전통 명리 해석에서는 해당 지지의 기운이 허하여 결실이 더디다고 경계해 왔으나, 현대 명리학에서는 이를 채워 갈 여백, 곧 '비움의 자리'로도 풀이합니다. 갑자순의 공망인 술과 해는 오행으로 토와 수에 해당하며, 음양으로 술은 양토, 해는 음수입니다. 술은 개띠로 가을의 끝자락에 만물이 저장되는 시기를 상징하고, 해는 돼지띠로 겨울의 시작에 만물이 수장되는 시기를 상징합니다. 이 두 지지가 비어 있다는 것은 저장과 수렴의 기능에 빈틈이 생긴다는 의미로, 모아두는 것보다 나누고 흘려보내는 데서 오히려 기쁨을 찾는 성향이 됩니다.
공망의 원리를 살펴보면, 10개의 천간이 12개의 지지와 짝을 이루어 갈 때, 천간 10개에 비해 지지는 12개이므로 반드시 2개의 지지가 짝 없이 남게 됩니다. 갑자순에서는 갑이 자부터 시작하여 계가 유에서 끝나므로, 술과 해가 짝을 잃어 공망이 됩니다. 이것이 공망의 수리적 원리입니다.
진공망과 가공망의 구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진공망은 공망 지지가 사주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고, 합에 의한 해소도 없는 경우로, 그 허함이 비교적 분명하여 물질적 결실이 더디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가공망은 공망 지지가 사주의 다른 곳에 있거나, 육합이나 삼합으로 해소되는 경우로, 공망의 영향이 크게 줄어들거나 거의 없어집니다. 예를 들어 갑자순에서 술이 공망이지만, 사주에 묘가 있어 묘술합이 되면 합에 의해 공망이 해소됩니다. 해가 공망이라도 인이 있어 인해합이 되거나, 해묘미 삼합이 성립하면 역시 공망이 풀립니다.
년주에 공망이 있으면 조상이나 부모의 음덕을 체감하기 어렵거나 어린 시절 변화가 잦은 환경을 경험할 수 있으나, 이는 일찍부터 독립심과 자립심을 기르는 계기가 됩니다. 월주에 있으면 직장이나 사회생활에서 기대한 것과 다른 결과를 경험하기 쉬우나, 이를 통해 유연한 대처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시주에 있으면 자녀나 말년 운에서 예상 밖의 전개가 있을 수 있으며, 그만큼 정신적 가치에 관심을 두게 되기 쉽습니다.
대운에서 공망이 채워지는 시기를 전공망이라 합니다. 갑자순의 경우 술이나 해의 대운이 올 때 공망이 채워지며, 이 시기에 그동안 비어 있던 기운이 활성화되어 큰 변화와 전환이 일어납니다. 오랫동안 준비해 온 것이 결실을 맺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삶이 전개되기도 합니다.
합에 의한 해소도 중요합니다. 묘술합으로 술 공망이 해소되고, 인해합으로 해 공망이 해소됩니다. 해묘미 삼합이 성립해도 해 공망이 풀립니다. 이렇게 합이 성립하면 공망의 허함이 채워져 실질적 결실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 활용 측면에서 공망은 물질적 집착에서 벗어나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종교, 철학, 예술, 봉사 등 정신적 영역에서 오히려 공망의 사람이 깊은 경지에 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빈 그릇이 가장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듯이, 공망의 허함이 정신적 성취의 공간이 됩니다. 실전 해석에서 공망된 자리에 흉신이 있으면 오히려 흉한 기운이 비어져 무력화되므로 길하게 작용합니다.
전통 명리 해석에서는 공망의 허함 속에 오히려 참된 것이 있어 물질에 얽매이지 않는 정신의 자유를 얻는다는 취지로 풀이하였고, 또 다른 전통 해석에서는 세속의 영화는 덜할 수 있으나 도를 구하면 크게 이룬다는 방향으로 해석해 왔습니다. 다른 전통 해석에서도 공망이 길신에 임하면 아쉽고 흉신에 임하면 오히려 이롭다고 보아, 상황에 따른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갑자순 공망을 가진 분은 저장과 수렴보다 흘려보내고 나누는 쪽에 마음이 더 가는 편입니다.